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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언스리뷰] 허물어지는 진리<세계일보>

최덕근 2011. 10. 3. 19:39

[사이언스리뷰] 허물어지는 진리<세계일보>
  • 입력 2011.09.28 (수) -->
      
빛보다 빠른 중성미자 발견 쇼크
진리는 영원한 게 아닌 진보의 과정
  • 얼마 전 발표된 중성미자 관련 연구 결과가 과학계를 강타하고 있다. 1905년 아인슈타인이 발표한 특수상대성이론은 지난 100여년간 절대 진리로 받아들여졌다. 그에 따라 과학자들은 빛보다 빠른 것은 없다는 가정을 토대로 현대 물리학의 이론을 구축했으나,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에 따르면 빛보다 빠른 속도로 움직이는 중성미자가 존재한다. 연구팀은 스위스에서 730km 떨어진 이탈리아까지 도달하는 데 걸리는 시간을 측정했고, 그 결과 중성미자의 비행속도는 광속보다 60나노(1억분의 6)초 빠르다.

    중성미자는 태양에서 핵융합이나 원전에서 핵분열을 할 때 발생하는 물질로서 다른 물질과 거의 반응하지 않기 때문에 그 실체에 대해 베일에 싸인 부분이 많다. 만약 이번 연구 결과가 사실이라면 공상과학 영화에서 상상의 나래를 펼친 것처럼 타임머신을 타고 시간여행을 즐기는 일도 가능해진다. 이번 연구는 권위 있는 연구소에서 수행됐음에도 워낙 충격적인 내용을 담고 있기에 회의적인 시각과 불신론이 대두되고 있다. 하지만 만약 연구 결과가 참이라면 이는 천동설을 뒤엎은 지동설에 비유될 만하다.

    박경미 홍익대교수·수학
    흔히 수학과 과학은 시공을 초월해 확실하고 보편적인 절대 진리를 다루는 학문으로 여겨진다. 그렇지만 수학과 과학의 역사를 되돌아보면 지식의 성장은 확실성을 갖는 지식이 누적돼 온 양적 확장의 과정이라기보다는 그 지식을 의심하고 비판하고 반증하는 가운데 질적 변화를 이루어 온 변증법적 과정임을 알 수 있다. 그 대표적인 예가 비유클리드 기하학이다.

    유클리드 기하학의 기저를 이루는 평행선 공준에 따르면 한 직선과 그 직선 밖의 한 점이 주어졌을 때 그 점을 지나면서 주어진 직선에 평행한 직선을 단 하나 그을 수 있다. 2000년 동안 절대적인 위치를 차지해 온 유클리드 기하학은 19세기에 등장한 비유클리드 기하학에 따라 그 유일성이 무너지게 된다. 평행선을 무수히 많이 그을 수 있는 쌍곡기하학과 평행선을 한 개도 그을 수 없는 타원기하학이 출현함에 따라 대안적인 기하학의 존재를 인정하게 된 것이다.

    코페르니쿠스는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라는 생각을 뒤엎고 지동설을 주장해 말 그대로 인식의 ‘코페르니쿠스적인 전환’을 이루었다. 천문학자 브라헤는 천동설을 옹호하기 위해 행성을 관측했지만 그의 제자 케플러는 동일한 자료에 기초해 지동설을 주장했다. 동일한 관측 자료를 통해 브라헤는 지구 주위를 회전하는 천체로서의 태양을 보았고, 케플러는 지구가 그 주위를 회전하는 태양계의 중심으로서의 태양을 본 것이다.

    수학과 과학의 지식은 가장 확실성이 높다고 간주되지만 수학과 과학의 몇 가지 예만 살펴보더라도 반드시 그렇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이와 같이 수학과 과학 지식의 오류가 가능하다는 생각을 확산하는 데 기여한 것이 포퍼와 라카토스다. 포퍼에 따르면 과학적 지식은 참임이 완전히 입증된 진리가 아니라 반례가 출현해 반증되기 전까지 잠정적인 참인 것으로 취급되는 지식일 뿐이다. 라카토스에 따르면 수학은 체계적이고 연역적인 특성을 지니고 있지만 그 이면에는 추측하고 증명하고 반례가 출현하고 추측과 증명을 수정하는 역동적인 과정이 들어 있다.

    수학과 과학은 영원히 변치 않는 진리의 집적체가 아니다. 수학과 과학의 지식이란 광대한 우주의 한쪽 귀퉁이에서 살고 있는 불완전한 인간이 좀 더 높은 수준의 인식에 도달하기 위해 노력하며 진보하는 과정의 기록일 뿐이다. 최근 파장을 일으킨 중성미자 관련 연구는 우주와 물질의 근원에 대한 인간의 정직한 구도의 과정으로, 그 연구 결과 역시 반증되기 전까지만 참으로 여겨질 잠정적인 지식일 뿐이다.

    박경미 홍익대교수·수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