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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해욱신부 피정 3

최덕근 2007. 7. 23. 13:31
피정 3 [류해욱신부님]
3. 피정의 목적과 지도자의 역할


  각 피정마다 특별한 목적을 갖고 행해질 수 있으나, 일반적으로 피정의 목적은 자신의 일상 삶에서 벗어나 고요함을 추구하면서 주님과 함께 하는 시간을 갖는 것이다. 피정을 정의하는 가장 일반적인 표현의 하나로 최근에는 ‘주님과 함께 하는 휴가’라는 말을 많이 사용한다. 과거에는 피정이 자신의 삶을 돌아보면서 성찰과 반성을 통해 양심을 깨끗하게 함으로써 영혼을 정화시키는 기간이라는 이미지가 강조된 반면에 요즘은 주님 안에서 조용히 쉬는 시간으로서의 이미지가 더 크게 부각된 것이다. 이것이 바쁜 삶을 사는 현대의 성직자, 수도자, 평신도들의 요청이기도 하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피정을 하는 목적은 주님 안에서 주님과 함께 머물고 쉬기 위함이다. 이를 위해서 무엇보다 중요한 자세는 피정 기간 동안 자신을 주님께 맡겨 드리는 것이다. 어느 피정이나 피정을 이끄는 지도자가 있기 마련이지만 실제적인 피정의 지도자는 언제나 주님 자신이며 성령이다. 피정 지도자는 다만 주님께서 피정을 이끌어 가시도록 도와드리는 보조자의 역할만을 해야 한다. 피정의 목적이 주님 안에서 주님과 함께 쉬는 것이라면 온전히 피정자 자신을 주님께 맡겨드리고 그분이 이끄시는 대로 따라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피정 지도자는 피정자들이 긴장을 풀고 주님께 자신을 맡겨드리도록 도와주기 위해서 피정자들에게 피정 지도자로부터도 어떤 긴장도 받지 않도록 세심하게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특별한 목적을 갖고 피정이 행해지는 경우가 있다. 예를 들면, 부제품이나 사제품 준비 피정, 종신 서원 준비 피정, 성소 식별 피정 등이다. 이런 경우 피정자들은 더 큰 긴장과 부담을 갖고 피정에 임한다. 따라서 지도자는 더욱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서 그들이 긴장을 풀고 주님 안에서 쉬면서 주님과 함께 편안히 머무는 가운데 서품이나 서원의 준비를 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특별히 성소 식별을 위한 피정이라면 성소는 궁극적으로 주님의 뜻을 따르는 것임을 인식하고 평화 안에서 주님의 부르심을 느낄 수 있도록 더욱 편안한 분위기를 만들어 주어야 한다.

 

  일반적으로 피정을 하면서 체험하게 되는 것은 하느님의 사랑과 이끄심이다. 주님과의 만남이 이루어질 때 인간은 그분과의 관계가 새롭게 정립됨을 체험하며 내면 안에서 깊은 평화와 내적인 자유를 얻게 된다. 피정 지도자가 피정에서 해야 하는 역할은 바로 이 내적인 자유, 영적인 자유를 얻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따라서 피정 지도자는 성령께서 피정을 이끄시고 주관하신다는 신뢰를 지닐 수 있도록 편안한 분위기를 만들어 주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피정자가 마음을 열고 자신을 온전히 성령의 이끄심에 맡겨드릴 수 있는 영적인 자유를 얻도록 도와주기 위해서 피정 지도자가 지녀야 할 자질이 있다면 본인이 영적으로 자유로워야 한다. 특별히 개인 지도 방식의 피정에서 지도자는 피정자의 영적 동반자로서 함께 식별을 도와주는 역할을 한다. 이때 지도자가 먼저 온전히 성령의 이끄심에 따라 피정과 피정자를 맡겨드릴 수 있는 영적 자유의 상태에 있어야 한다.


5. 피정의 주보 성인과 영신 수련


  교황 비오 11세는 1922년 7월 22일자의 회칙 Summorum Pontificum에서 성 이냐시오를 피정의 주보 성인으로 선포하였다. 또한 교황1929년 12월 20일자의 회칙 Mens Nostra를 통해서 성 이냐시오의 ‘영신수련’을 “구령과 완덕의 길에서 영혼 지도상 가장 현명하고 보편적인 법전인 동시에 가장 깊고도 견고한 경건심의 마르지 않는 원천으로서 생활 개선의 길을 가르쳐주며, 영신생활의 높은 수준에 달하는 지름길을 밝혀주는 엄중한 각성의 소리로서 대단히 정확한 지도서가 되었다”고 천명하였다. 이로써 교회는 성 이냐시오의 ‘영신수련’이 탁월한 피정 방법임을 공인하였다.

 

  성 이냐시오의 ‘영신수련’은 1548년 교황 바오로 3세에 의해 승인된 이래 오랫동안 거의 유일한 피정의 보고였다. 오늘날 다양한 피정 방법이 생겨났지만 대부분 성 이냐시오의 ‘영신수련’에 바탕을 두고 응용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성 이냐시오의 ‘영신수련’이 지니고 있는 가장 커다란 장점은 철저하게 하느님을 중심으로 이끌어 가는 흐름이다. ‘영신수련’을 통해 성 이냐시오가 얻고자 했던 목적이 있다면, ‘모든 것 안에서 하느님을 발견’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피정에서 체험한 하느님 사랑을 일상의 삶 안에서도 살아가도록 돕는 것이다.

 

  성 이냐시오의 ‘영신수련’의 흐름을 간단히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피정을 시작하면서 근본적으로 인간이 하느님 앞에 누구인가를 알기 위해서 ‘원리와 기초’라는 묵상을 한다. 이어서 ‘첫째 주간’, ‘둘째 주간’, ‘셋째 주간’, ‘넷째 주간’으로 이어지며 마지막으로 ‘사랑을 얻기 위한 관상’으로 끝난다. 각 주간은 7일간의 일정한 시간이 아니라 주제에 따른 구분이다. ‘첫째 주간’에서는 하느님 안에서 자기 자신을 성찰하면서 자기 자신을 만나는 시간이다. ‘둘째 주간’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전 생애를 관상하면서 그분을 알고 사랑하고 따르는 열망을 청하게 된다. ‘셋째 주간'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으심을 묵상하고 ‘넷째 주간’에서 그분의 부활을 관상한다. 마지막으로 ‘사랑을 얻기 위한 관상’은 피정 전체를 마무리하면서 이제 다시 일상 삶 안으로 들어가는 다리 역할을 한다. 피정자는 피정을 통해 일상의 삶 안에서도 ‘모든 것 안에서 하느님을 발견’하는 삶을 살게 된다.


6. 피정에 필요한 기타 사항들


1) 피정의 집(또는 피정 센터)

  피정을 하기 위하여 적절한 장소를 마련하는 것도 상당히 중요하다. 피정이 일상 삶에서 벗어나서 고요 안에서 주님과만 함께 있는 시간을 마련하는 것이라면, 실제적인 피정의 장소가 번잡한 삶의 터에서 떨어져 있는 곳이 좋다. 피정을 하기 위해서는 “따로 한적한 곳으로 가서 함께 좀 쉬자”(마르 6, 31)고 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모범을 따라 한적한 장소를 마련해야 한다. 피정 장소의 필요성에 대해 성 이냐시오는 “한적한 곳에 외따로 지냄으로써 정신이 많은 일에 분산하지 않고 모든 관심을 하느님을 섬기고 자기 영혼을 향상시키는 한 가지 일에 집중하여 하느님이 주신 우리의 능력을 더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라고 언급했다. 우리가 따로 한적한 곳에 떨어져 있을수록 하느님께 가까이 다가가기에 더 적합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성 이냐시오에 따르면, 주님과 가까울수록 주님이 주시는 은총과 선물을 받을 내적인 준비를 더 잘 갖추게 된다. (영신 수련 20 참조)


2) 침묵

  피정을 잘 하기 위해서 여러 가지 준비들이 필요하겠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마음의 준비다. 피정은 무엇보다 마음의 고요 속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대부분의 피정에서 침묵이 요구되지만 외적인 침묵뿐만 아니라 마음의 고요가 이루어지는 내적인 침묵도 필요하다. 피정에서 침묵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번잡한 세상의 일상에서 물러나서 고요 안에서 주님과 만나기 위해서는 침묵이 절대적으로 필요하기 때문이다. 최근에 와서 다양한 형태의 피정이 이루어지면서 ‘대화’나 ‘나눔’의 방법이 사용되고 있지만 그런 피정도 ‘대화’나 ‘나눔’의 시간 이외의 전체적인 분위기는 침묵 안에서 형성되어야 한다. 침묵 안에서만 주님이 중심이 되고 그분이 이끄시는 대로 따르면서 피정을 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침묵 없이 행해지는 피정은 ‘연수회’나 ‘세미나’는 될 수 있지만, 진정한 의미에서는 피정이라고 부르기에는 적절하지 않다.


2) 식사와 수면

  재미있는 표현으로 피정의 3대 요소를 영어로 ESP라고 한다. E는 to eat에서 먹는 것을 지칭하고, S는 to sleep에서 자는 것을 가리키며 P는 to pray로 기도하는 것을 나타낸다. 좋은 피정이 되기 위해서는 잘 먹고 잘 자고 나머지 시간에 기도하라는 해학이 생길 정도로 피정에서 식사와 수면은 중요하다. 단식을 하면서 하는 피정도 있지만 예외의 경우이고, 일반적으로는 기도하는데 상당한 에너지가 요구된다는 것을 고려하여 적당한 식사가 필요하다. 과식은 금물이다.

  피정의 주제나 내용에 따라서 적절한 식사량을 조절하는 것이 도움이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성 이냐시오의 ‘영신수련’에 의한 피정에서 죄를 묵상하는 첫째주간이나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을 묵상하는 ‘셋째주간’에서는 필요한 극기를 위한 단식이나 식사량을 조절하는 것이 권고되기도 한다. 그러나 항상 자신의 건강 상태나 나이 등을 고려해서 지도자의 안내에 따라 행해져야 한다.

  피정에서 충분한 수면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충분한 수면으로 몸과 마음의 컨디션이 좋아야만 기도 속으로 깊이 침잠해 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성 이냐시오 당시에는 보속으로 고행을 하는 것이 일반적인 관례였기 때문에 그는 '피정을 잘 하기 위한 부칙'에서 잠자리에 대한 고행을 언급한다. 여기에서 이냐시오는 “적당한 잠자리에서 필요한 어떤 것을 줄이면 고행인데 몸도 상하지 않고 병도 나지 않는 범위에서 적절하게 해야한다”고 말함으로써, 지나친 고행을 하지 말라고 당부했다. 잠을 너무 많이 자는 나쁜 습관이 있어서 그 악습을 고쳐 중용에 이르고자 하는 지향이 아니라면 필요한 수면 시간을 줄여서도 안 된다. 그러나 오늘날 고행이 더 이상 적절한 방법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지 않지만 “어떤 문제의 해결을 원할 때 하느님의 도움을 구하기 위해서 고행을 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는 성 이냐시오의 말은 여전히 유효하다.(영신 수련 84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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