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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방부칼럼] 삶의 틀 바꾸는 ‘의학연령’

최덕근 2011. 3. 7. 20:52

[윤방부칼럼] 삶의 틀 바꾸는 ‘의학연령’<세계일보>
  • 입력 2011.03.06 (일) 1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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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이 자살했다! 건강보험재정의 32%를 노인들이 사용하고 있다! 2050년에는 세계에서 80세 이상의 노인인구가 30명당 1인이 될 것이다! 우리나라도 2050년에는 인구의 38.2%가 65세 이상의 노인이라고 한다. 그러면서 이곳저곳에서 출산율은 떨어지고 노인인구는 늘어가는 ‘저출산 고령화 대책’을 논하며 한숨을 쉰다.

얼마 전 노인이 참석자의 주류인 모임에서 강연했다. 강연 중 참석자에게 소위 노인이 되어 생긴 증상을 말해보라 했다. 어떤 사람은 말이 많아졌다, 또 어떤 사람은 허리가 구부러진다, 돈이 없다, 고독하다, 자신이 없다, 자기중심적으로 생각한다, 마누라가 무섭다, 남편이 귀찮아진다, 의욕이 없다, 자식 때문에 걱정이다 등이었다. 나이가 들면서 흔히 말하는 누구나 겪는 고통이 있다. 질병, 고독감, 경제적 빈곤, 그리고 역할상실이다. 또 항간의 농담 하나를 더 보태면 부드러운 것이 딱딱해지며 딱딱한 것이 부드러워지는 것이다.

물론 늙었다는 증거가 어디 이것뿐이랴. 하여튼 나 자신 마음속으로 꼽아보니 다행히도 나는 이러한 증거들 중에 어느 한 가지도 해당되는 것이 없었다. 어릴 때는 빨리 어른이 되고 싶고 해가 바뀌는 게 즐거웠지만 어른이 되면 해가 바뀌는 일이 두렵기만 하다. 특히 50이 지나 60 또는 70∼80세가 되면 더욱 그러하다.

우리 사회에서 나이가 든다 또는 많다는 건 그만큼 기회를 잃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또 모든 일에서 조금씩 뒤로 물러나야 한다는 걸 의미하기도 한다. 아직 갈 길이 멀었는데 지금이라도 마음만 먹으면 무엇이든 할 것 같은데 몸과 마음이 예전 같지 않다는 걸 느끼는 순간 ‘흐르는 세월을 어찌 하랴’는 한탄이 절로 나오기도 한다. 그러나 한탄보다는 자연현상으로 순하게 받아들이는 것이 더 자연스럽지 않을까.

사람의 연령에는 네 가지가 있다. 자연연령, 건강연령, 정신연령, 영적연령이다. 영국의 심리학자 브롬디는 인생의 4분의 1은 성장하면서 보내고 나머지 4분의 3은 늙어가면서 보낸다고 했다. 맞는 말이다. 따라서 늙는다는 것,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삶의 완성을 위해 꼭 필요한 하나의 과정이 아닌가. 사람이 살아가면서 거창한(?) 말로 ‘철학’이 있어야 한다고 한다. 결국 이 말은 ‘노인’이라고 호칭되는 연령에게 철학이 있어야 한다는 말이기도 하다. 세계 역사에서 배울 것은 역사상 최대 업적의 35%는 60∼70대에, 23%는 70∼80세 노인에 의하여, 6%는 80대에 의해 성취됐다고 한다. 결국 역사적 업적의 64%가 노인에 의해 성취됐다고 한다.

우리가 잘 아는 괴테가 ‘파우스트’를 완성한 것은 80세가 넘어서였고 소포클레스가 ‘클로노스의 에디푸스’를 쓴 것은 80세 때였고, 다니엘 드 포는 59세에 ‘로빈슨 크루소’를 썼고, 미켈란젤로는 로마의 베드로 대성전의 돔을 70세에 완성했다. 베르디, 하이든, 헨델 등도 고희의 나이를 넘어 불후의 명곡을 작곡했다. 나이 듦을 의식할 필요가 없다. 더욱이 슬퍼할 것도 없다.

미국의 낭만파시인으로 영원한 청년으로 불리는 롱펠로는 나이가 들어간다고 생각하기보다 매일 조금씩 더디지만 성장한다고 생각하며 살았다고 한다. 자연은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야 한다. 중요한 것은 자연나이가 아니라 스스로 만드는 건강연령, 정신연령, 영적인 연령이다. 왜냐하면 바로 각자에게 달린 것이기 때문이다.

공인된 것은 아니지만 현대 사람들이 감사하며 또 자신을 가질 의학연령(신체의 기능, 생리)이라는 것이 있는데 현재의 모든 여건이 향상되다 보니 자연연령도 그 생리기능면에서 70세는 과거의 50세 정도고, 80세는 60세 정도로 자기 나이에 대략 0.7을 곱하는 의학연령시대라는 것이다. 따라서 개인의 삶도 사회의 대책도 여기에 맞추어야 한다.

가천의과학대 부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