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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로] 서남표 총장의 잘못은 다른 데 있다

최덕근 2011. 4. 15. 21:31

[태평로] 서남표 총장의 잘못은 다른 데 있다

  • 입력 : 2011.04.14 23:09
이한우 기획취재부장

논어(論語)는 공자가 말했다는 '學而時習之 不亦說乎(학이시습지 불역열호)'로 시작한다. 우리는 이를 '배우고 때로 익히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라고 배웠다. 최근 문제가 된 이공계 엘리트들의 자살 사건을 보면서 다시 논어를 펴들고 이 구절을 음미해보았다. 학습(學習)을 '기쁜 일'이라 했는데 왜 공부 하나는 누구보다 잘하던 학생들이 극단적 선택을 했을까?

상식적으로 배우는 것(學)과 익히는 것(習)은 결코 기쁜 일이 아니다. 고역(苦役)이다. 단조롭고 막막하고 불안한 것이 학습이다. 교실 밖에서는 즐겁지만 안에서는 그다지 기쁘지 않은 것이 우리들 대부분의 학창시절이다. 그런데 왜 수천년 고전의 지위를 누려온 논어는 첫머리에서 이런 '헛소리'를 하고 있는 것일까?

논어를 수없이 반복해 읽다 보면 조금씩 그 실마리가 나온다. '위정(爲政)'편에서 공자는 '溫故而知新 可以爲師矣(온고이지신 가이위사의)'라고 말한다. "옛것에 숨결을 불어넣어 새로운 것을 알게 되면 (더 이상 학습해야 하는 학생이 아니라 남을 가르칠 수 있는) 스승이 될 수 있다"는 뜻이다. '學而時習之(학이시습지)' 다섯 자가 '溫故(온고)' 두 자에 녹아든다. 도서관에서 아무도 읽지 않는 책은 얼어붙은 채로 차갑게 놓여 있는 신세다. 그것을 누군가가 읽기 시작하면 책 속에 굳어 있던 전통이 온기를 띠며 새로운 생명을 얻게 된다. 온고(溫故)해야 지신(知新)이 이뤄진다. 물론 옛것을 깊이 배움으로써 새로운 것을 알게 되는 '지신(知新)'의 단계에 이르는 길은 고통스럽다. 그러나 새로움을 알게 되는 것은 누구에게나 기쁨이다. 공자가 '學而時習之 不亦說乎'라 했던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학습(學習)이 기쁜 것이 아니라 학습을 통해 새로운 것을 알게 되니 기쁘다는 것이다.

공자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매일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하는 하루가 되라고 충고한다. 그것이 바로 대학(大學)에서 강조한 '日新又日新(일신우일신)'이다. 하루라도 마음속에서 새로움을 키우려는 노력을 중단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학습(學習)'만 강조하면 고리타분하기 그지없던 공자의 가르침도 '학습'에서 '온고이지신'을 거쳐 '일신우일신'으로 나아가는 순간 완전히 바뀐다. '기쁨'의 의미가 이해될 뿐만 아니라 학습의 의미도 새롭게 받아들이게 된다.

카이스트 학생들의 연이은 비극으로 여기저기서 서남표 총장을 향해 돌을 던지고 있다. 물론 서 총장이 진정 학생들을 새롭게 만들려 했는지, 아니면 '세계 1등'이라는 목표를 향해 맹목적으로 달리는 공부기계를 만들려 했는지는 진지한 성찰이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서 총장은 분명 학생들을 환골탈태(換骨奪胎)시키려 했고, 방향 자체도 크게 잘못된 것은 아니다. 굳이 서 총장을 탓해야 한다면 요즘 학생들의 유복한 성장환경과 부모의 과보호 등을 고려하여 강한 정신력을 기르는 데도 중점을 두지 못한 데 있는 것이 아닐까?

요즘 CEO들 사이에 인문학, 그중에서도 논어가 인기라고 하는데 실은 대학생들, 특히 이공계 엘리트들이 반드시 논어를 읽어볼 것을 권한다. 안 읽어볼 학생들을 위해 공자의 제자 증자(曾子)의 말을 전한다. "선비는 마음이 넓고 뜻이 굳세지 않으면 안 된다. 책임이 무겁고 길이 멀기 때문이다. 남을 위하는 어진 마음(仁)을 자신의 임무로 삼으니 무겁지 않은가? 죽은 뒤에야 끝나니 멀지 않은가?" 학생들이여! 힘을 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