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가장 한국적인 색깔<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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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에서 2012년까지 한국 방문의 해를 맞아 외국인에게 한국을 조금이라도 더 알릴 수 있는 방안에 대한 관심이 높다. 며칠 전 명동을 지나가다가 우연히 한 의류 회사에서 행인들을 상대로 이벤트를 벌이고 있는 것을 보았다. 가장 한국적인 색에 대해 묻고 상품을 주는 식이었는데, 잠시 지켜보았을 뿐이지만 어느 외국인의 답변이 퍽 인상적이었다.
그는 망설이지 않고 초록색을 꼽았다. 이벤트 진행자가 이유를 묻자 소주병이 초록색 아니냐는 기막힌 대답을 내놓았다. 사람들이 웃음을 터뜨렸지만 그는 진지했다. 이어지는 설명을 더 듣지 못하고 그곳을 벗어나면서 나는 새삼스레 한국적인 색이 무엇일까 자문해 보았다. 그런데 뜻밖에도 초록색이 정말 한국적인 색들 중 하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남산 위에 저 소나무 철갑을 두른 듯…. 나라마다 오랜 세월 동안 운명을 함께해온 나무가 있다. 유럽의 떡갈나무, 지중해 일대의 올리브나무, 일본의 편백, 그리고 한국의 소나무. 우리 민족에게 소나무는 단순한 나무 이상이었다. 건축에 쓰이고 먹을거리로 쓰이고 공예, 문학, 회화 등 예술분야에도 주요 소재로 쓰였다. 우리 조상들은 태어날 때 생솔가지를 꽂은 금줄로 보호받고, 살아서는 소나무로 지은 집에 기거했으며, 죽어서는 소나무로 짠 관에 들어갔으니 소나무는 문자 그대로 ‘삶’이었다. 그것의 특징이 바로 초록이다. 사시사철 푸른 그 절개와 기상이 소나무의 본질인 것이다.
김미월 소설가
고려청자는 또 어떠한가. 특히 상감청자의 경우 투명한 듯 불투명한, 독특하고 오묘한 그 초록빛의 아름다움을 어떤 말로 표현할 수 있겠는가. 당대의 양반들이 백자보다 청자를 선호했기 때문에 청자가 더 많이 만들어졌고 현존하는 자기도 청자가 훨씬 더 많다고 한다. 이는 초록빛에 대한 우리 민족의 은근한 애정을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게다가 서양에 에메랄드가 있다면 동양에는 비취가 있다 했던가. 옛 여인의 장신구였던 초록빛 보석. 한자로 ‘비(翡)’가 빨강, ‘취(翠)’가 초록을 의미하듯이 초록, 빨강, 보라, 노랑 등 색깔이 다양하지만 초록색만을 비취라 일컬으며 초록색이 최상품이다. 비취는 한복과 가장 잘 어울리는 보석이기도 한데, 옛날 어머니들이 딸이 시집갈 때 비취로 만든 비녀를 대대로 물려주었을 정도로 특별하게 취급돼 왔다.
그 밖에도 녹차를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초의 선사나 다산 정약용, 추사 김정희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여러 문헌이나 유물을 통해 잘 알려져 있다시피 우리 선조의 차 문화는 그 역사가 유구하다. 특히 장수 식품으로서의 효능이 입증된 후 건강을 최우선으로 삼는 현대인의 삶에서 녹차는 일상 깊은 곳까지 뿌리내리고 있다.
이렇듯 사례들을 늘어놓고 보니 소나무나 청자, 비취, 녹차와 우리 선조의 삶을 떼어놓고 생각하기가 어려운 만큼 초록색이 우리 민족을 표현하는 색 중 하나라는 사실 또한 부정하기가 쉽지 않았다.
물론 그렇다고 가장 한국적인 색이 초록색이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백의민족의 표상인 흰색도 한국적인 색이고, 월드컵 당시 온 세상을 뒤덮었던 붉은 악마 티셔츠의 빨간색도 한국적인 색이며, 우리 전통 옹기의 질박한 흙색이나 음양오행의 오행을 나타낸 오방색도 한국적인 색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이제껏 가장 한국적인 색은 당연히 흰색이라고만 생각해온 나에게 실제로 한국적인 색이 무엇인지에 대해 고민해볼 수 있었던 시간이 흥미로웠다는 사실이다. 어쩌면 가장 한국적인 것에 대해 가장 잘 아는 사람은 우리 내부가 아니라 우리 외부에 있는지도 모르겠다는 깨달음을 얻었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말이다.
김미월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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