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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7월 13일 수요일 연중제15주간 수요일

최덕근 2005. 7. 28. 13:35

7월 13일 연중 제 15주간 성헬리코

 

탈출기 3,1-6.9-12 / 마태오 11,25-27

 

연중15주간에 교회에서는 제1독서로 출애굽기를 묵상하도록 초대하고 있습니다. 지난 월요일 파라오 왕이 왜 그런 행동을 하게 되었는가에 대해 묵상하였습니다. 어제부터는 한 파란만장한 한 인간의 삶을 봅니다. 탄생의 축복은 고사하고 태어남과 동시에 죽음의 위협 속에서 내동댕이쳐진 모세입니다. 위협을 감수하고도 3개월이나 숨겨 키울 정도로 예뻤던 아기이었지만 자신의 부모의 손에 의해 강으로 던져져 죽음으로 내몰려야 했습니다. 우연히 파라오의 딸에 의해 목숨이 구해져 자신의 엄마를 유모로 알고 젖을 먹어야 했습니다. 그 후 생모와 가족, 민족을 떠나 역설적이게도 자신을 죽음으로 내몰았고, 자신뿐만 아니라 이스라엘 민족의 이 모든 불행과 고통의 원인을 제공한 원수의 왕궁에서 그 딸의 양자로 입양되어 왕자로 교육받고 성장했습니다.

 

그러나 왕궁에서의 삶은 모세에게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그 다지 행복한 삶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자신을 이집트인이라고 굳게 믿었고, 자신의 엄마가 공주로 생각하고 자랐던 모세이었습니다. 그러나 어느 날 성서에서는 자세한 기록이 없지만 모세는 자신이 이스라엘인이라는 출신배경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집트 왕자로 이집트인들은 물론 자신이 업신여기고 멸시하며, 조롱했던 이스라엘 민족이 실상 자신의 출신배경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후 그는 심한 충격에서 헤어나오지 못했을 것입니다. 나는 누구인가?, 이스라엘 사람인 내가 왜 이집트 파라오 딸의 양자가 되었는가? 아마도 자신의 정체성에 휩싸인 채 청소년시기를 보냈을 것입니다. 이와 함께 자신을 어디서 굴러들어 왔는지도 모르는 돌처럼, 근본도 없는 천민 이스라엘인으로 생각하는 이집트인들의 따가운 눈초리를 견뎌 내야 했습니다. 이러한 충격과 멸시와 업신여김이 그에게 내적인 분노와 울분을 쌓게 했습니다. 그는 아직 하느님을 알지도 만나지도 못했습니다. 그에겐 하느님이 아무런 의미도 없었고 자신의 불행하고 저주스런 삶에 대해 울분만 가득 차 있었습니다.

 

이런 와중에 두 가지 사건이 모세의 삶을 180도 바꾸어 놓게 합니다. 첫째 사건은 어느 날길을 가다 이스라엘인과 이집트인이 싸우는 것을 보고 자신 안에 싸여 있던 분노와 격정으로 순간적으로 이집트인을 살해하고 맙니다. 물보다 피가 더 진하다고 할까요……비록 자신의 출신배경을 저주했을지는 몰라도 자신 안에 숨겨져 있는 억압 받고 있는 이스라엘 민족에 대한 연민이 미성숙하게도 폭력적으로 분출되고 말았습니다. 두 번째 사건은 같은 이스라엘인의 분쟁에 동포심으로 끼어 들었다가 거절 당합니다. 분쟁에 끼어 들었지만 그들에게서 돌아 온 것은 거절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왕자라는 신분을 버리고 같은 동포를 구해주었던 이스라엘인으로부터도 자신이 자랐던 이집트의 왕궁으로부터도 살인자로 쫓기는 신세가 되어 사막으로 도망쳤습니다.  그 누구에게서도 도움을 받을 수 없고 도움을 청할 수 없고 하루하루 생명을 부지해야 할 그런 비참한 삶으로 내동댕이쳐 졌습니다. 이때가 그의 나이 40세 되던 해라고 사도행전 7,23 순교자 스테파노가 그의 설교에서 언급합니다. 나이 40세 쫄딱 망한 것도 모자라 살인자가 되어 도망치는 삶이 모세의 삶이었습니다. 인간적으로 보면 완전히 실패하고 그 어디에도 희망이 없는 암흑의 삶이 지금 모세의 삶이라고 하겠습니다.

 

그 후 40년이 지난 후의 이야기가 바로 오늘 제1독서의 이야기 입니다. 이 40년 동안 그는 사막에서 무엇을 했습니까?. 왕자의 신분으로 왕궁에서 호화롭게 살던 그가 하루아침에 양치기로 사막의 모래바람과 뜨거운 햇볕,..갈증으로 보내야만 했습니다. 우연히 목동이었던 이드로의 눈에 띄어 그의 사위가 되었습니다. 왕자에서 양치기로 평범한 한 가정의 가장이 되었습니다. 화려한 궁에서의 생활대신 사막의 천막생활이 기름지고 향긋한 궁중요리대신에 거칠고 딱딱한 음식을 먹어야 했습니다. 그가 40년간 이 사막에서 무엇을 배웠겠습니까? 자신의 가족과 친지, 민족들로부터 떨어졌고, 당시 최고의 학문과 경제국이었던 이집트에서 받은 최고의 엘리트 교육에서 배운 자신의 모든 방법, 지식, 자기의 왕자로서의 경험, 희망 이 모든 것이 아무런 소용이 없는 가치가 없다라는 것을 배워야만 했을 것입니다. 모세는 40년간 고독 속에서 보내는 법을 배웠습니다. 왜 이런 시간을 보내야만 했습니까? 그 해답이 오늘 제1독서와 복음에 있습니다.

 

첫째. 모세는 무엇을 보았는가?

             저 떨기가 어째서 타지 않을까? 이 놀라운 광경을 가서 보아야겠다 의문을 던집니다. 왜 타지 않을까? 별일 다 있네.참 이상한 일이네..하며 지나치지 않았습니다. 신기해합니다. 호기심을 가지고 질문을 하는 사람으로 변했습니다. 자신의 지식이나 자기의 힘으로 무엇인가를 해 보고자 했던 어제의 제1독서에서 패기만만하던 그런 모세가 아니었습니다. 단순해졌습니다. 또한 이 놀라운 광경을 가서 보아야겠다 라고 반응입니다. 어제의 독서에서 사람을 때려 죽이고, 동포들의 분쟁을 살펴보고 들어볼 생각도 없이 무조건적으로 뛰어 들던 그런 혈기왕성한 모습들과 ...자신이 무엇인가를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그런 모습은 온데간데 사라졌습니다. 저 놀라운 광경이라 생각하고 가서 보아야겠다.라며 그는 다가섭니다. 신중해 졌습니다. 단순함, 신기함, 신중함. 이것이 40년간의 사막의 고독한 삶이 모세를 변화시킨 것이 아니겠습니까?

 

두 번째, 무엇을 들었는가?    

모세야.. 모세야……” 하느님께서 자신을 부르시는 음성을 들었습니다. 자신은 버려진 줄, 모든 사람에게서 잊혀진 줄실패하고 좌절하고 도망치는 삶으로 더 이상 희망도 없는 삶이라고 생각했던 자신에게 하느님께서 부르시는 음성을 듣습니다. 모세의 삶에 하느님이 개입하셨습니다. 하느님께서 모세를 사용하시기 위해 그의 나이 80세 그의 양치기의 삶에 개입하셨습니다. 하느님께서 모세를 당신이 원하는 사람이 되기까지 80년간이나 기다렸습니다. 하느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기까지 모세에겐 80년간이란 시간이 삶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사실 시간은 아깝지 않습니다. 성숙해질 수 있다면. 이 하느님께서는 창세기 22,1에서 아브라함아..아브라함아…”/ 사무상권 3,10 사무엘아..사무엘아 / 루까 22,1 시몬아 시몬아 / 루까 10,41 마르타야 마르타야처럼 우리 삶에 개입하시며 우리를 부르신다. 두 눈을 감고 내 이름을 하느님께서 어떻게 부르는지 그 음성을 들어봅시다.

 

하느님께서 나를 어떻게 부르십니까? ………..

.............................................................하느님께 무엇이라고 대답하셨습니까?

 

하느님의 부름에 모세는 예 말씀하십시오.라고 대답합니다. 모세의 이런 응답은 당신의 음성에 듣겠습니다. 예, 말씀하십시오.라는 고백적 응답의 뜻이겠죠. 다시 하느님께서 내가 이제 너를 파라오에게 보낼 터이니 너는 가서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이집트에서 건져내어라.라고 소명을 주시자 모세는 제가 무엇인데 감히 파라오에게 가서 이스라엘 백성을 이집트에서 건져내겠습니까?라고 대답합니다. 겸손도 이런 겸손이 없습니다. 사막에서의 40년간의 삶이 모세를 이렇게 변화시켰음을 다시금 확인하게 됩니다. 왕자로서의 패기도 우월감도 전혀 없는 어찌 보면 한낱 겁쟁이 같은 모습일 수도 있지만 이는 무한하고 절대자이신 하느님 앞에 유한한 한 성숙한 인간이 보이는 모습에 더 가깝겠습니다. 모세의 이와 같은 모습을 오늘복음에서 예수께서는 하늘과 땅의 주인이신 아버지, 안다는 사람들과 똑똑하다는 사람들에게는 이 모든 것을 감추시고 오히려 철부지 어린아이들에게 나타내 보이시니 감사합니다. 그렇습니다. 아버지! 이것이 아버지의 원하신 뜻이었습니다.라고 하신 듯 합니다. 어린아이의 여러 특성이 있지만 단순함과 신기함, 들고자 하는 자세와 두려움을 모세를 통해 봅니다.

 

셋째. 하느님의 은총 내가 네 힘이 되어 주겠다

           이렇게 변화된 모세에게 하느님께서 주신 은총은 내가 네 힘이 되어 주겠다. 자신의 능력과 지식, 신분의 가치를 다 잃고 40년간의 사막의 절대고독의 삶을 통해 모든 것을 포기한 후 정화의 과정을 통해 모세가 얻은 것은 이 세상적이고 인간적인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하느님의 힘, 하느님께서 함께 하시겠다.라는 약속이었습니다. 무엇이 더 필요하겠습니까? 하느님이 나의 힘이 되어 주시겠다고 하시는데....이 세상에 이와 같은 은총외에 아무것도 없을 것입니다.

 

40년간의 사막에서의 고독의 삶을 통해 모세를 성숙시킨 하느님 !

저 역시 성숙되길 원합니다. 80년이란 시간이 걸리면 어떻습니까?

다만, 나를 아는 성숙을 통해 좀더 당신께 가까이 가고 싶을 따름 입니다.

 

모세에게 힘을 주신 하느님, 저에게도 힘을 주십시오.

인간적인 지혜나 능력, 신분, 돈이 아니라 당신의 힘이 필요합니다.

제게 당신의 힘을 주소서.

한 말씀만 하소서 제가 곧 낳겠습니다. 

제가 곧 일어 날 수 있습니다. 

 

아-멘

 

 

출처 : 성 이냐시오의 영성
글쓴이 : MurMur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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